안정호, 이효종 팀장의 친절을 배우자.
필자는 태안군의회 안정호 의정팀장과 이효종 의사팀장의 친절을 착각(錯覺)했다. 필자에게만 친절(親切)한 줄로 착각했다. 아니다. 의회를 찾는 모든 이들에 친절하다. 본인들과 사무국 공직자들에 착각을 사과한다.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유행어가 시류(時流)에 따름도 실감했다. 70~80년대는 착각(錯覺)은 자유(自由)라는 말이 유행했다. 지금은 내로남불이 유행한다.
지금은 기록을 수기(手記)로 했던 시대가 아니다. 음성(音聲)과 영상으로 남기는 시대다. 또 카메라가 감시하는 디지털 시대다. 그러나 카메라에 보이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양심(良心)이다.
겉으로는 백설(白雪)같이 깨끗한 척 하면서 속으로는 음해(陰害)와 거짓, 음흉과 변명을 달고 사는 부류들이 있다. 배려(配慮)와 소통보다는 보복과 원심(怨心)이 판치는 세상이다. 진실(眞實)과 신뢰(信賴)는 사라지고 네 탓과 거짓이 판 치는 사회다. 내 잘못 은 없다. 전부가 네 탓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권을 보면 알 수 있다.
만병(萬病)치유의 명약이라는 웃음과 친절 소통과 화합은 없다. 고래도 춤을 춘다는 칭찬은 씨가 말랐다. 사회는 모함과 욕설 거짓과 보복은 여름철의 들풀(雜草)처럼 무성하다. 대문(大門)을 장식했던 소문 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명구도 없어진지 오래다. 웃으면 복(福)이 와요. 한 가족(家族)세(三)지붕이라는 홈드라마도 없어진지 오래다. 또 약(弱)한자여 그대이름은 여자(女子)라는 동정도 1900년대 소설에서나 볼 수 있다.
지금은 머리채를 잡고 고함치는 폭력프로가 판을 친다. 지금은 강(强)한자여 그대이름은 여자라는 이름이 됐다. 그래서 보석(寶石)같은 친절과 황금같은 웃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십년대한(十年大旱)에 소나기 같은 웃음과 보석상의 황금같은 친절에 감사하다. 친절에 굶주린 우리들에 친절을 베푼 공직자가 있다. 바로 태안군의회 공직자들이다. 모든 공직자들이 태안군의회 공직자들처럼 친절(親切)했으면 좋겠다. 친절은 고사하고 전화를 피하는 공직자들도 있다.
안정호 의정팀장과 이효종 의사팀장의 친절은 친절에 굶주린 주민들을 감동시킨다. 굉음(轟音)에 시달리고 민원(民怨)에 쌓인 주민이라도 이들의 친절에 생각을 달리할것이다. 민원은 춘풍에 잔설(殘雪)녹듯하고 굉음은 음악소리로 들리게하는 이들의 친절에 감사한다.
한 지붕 두 가족인 의회 공직자들과 집행부 공직자들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친절에 굶주린 민원인들이 감동하고 관존(官尊)에 익숙한 농어촌주민들이 감동한다. 그래서 무능(無能)한 다선(多選)보다는 유능(有能)한 초선(初選)이 좋고 무능한 간부(幹部)보다는 유능한 주무관(主務官)이 좋다.
안정호, 이효종 팀장의 친절은 여느 부서에서는 볼 수 없는 친절이다. 세월만 낚고 굉음에 함구하는 공직자는 이들 팀장을 본받아라.
30여년을 봉직(奉職)한 안정호와 15년여를 봉직한 이효종의 밝은 웃음과 친절에 박수치고 감사(感謝)하자. 꽃(花)중에 꽃은 무궁화(無窮花)꽃이라 했듯 공직자 중의 공직자인 이들에게 박수를 치자. 군계일학(群鷄一鶴)인 이들에 박수를 치자. 목에 힘주는자들이여 권불십년(權不十年)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알자.
우리는 잠재적인 민원인이요 잠재적인 행정소비자다. 태안군 정보통신팀 조영근, 오지영, 김동진 팀장과 서산시 신미애 교환주무관에게도 감사하다. 필자의 건의가 처음에는 귀찮았을 것이나 들어줘서 감사하다. 이들 주무관들에도 박수를 보내며 가세로 군수께 건의합니다. 가 군수께서 타(他)의 모범이 되어 많은 상(賞)을 수상했듯이 타의 모범인 친절공직자 시상제를 건의합니다. 수상자는 기쁘고 시상자는 흐뭇한 친절상을 말입니다.
또 작은 소리를 크게 듣고 실천해준 이완섭 서산시장에도 감사하다. 작은 소리를 크게 들을 줄 아는 지도자가 진정한 지도자다. 불통보다는 소통, 보복보다는 화합 거짓보다는 솔직한 지도자가 진정한 지도자다. 우리 다(多)같이 생각해보자. 동온하청(冬溫夏凊)으로 우리들을 감동시키는 안정호, 이효종 두 공직자(公職者)를. 이들에 행운이 있기 바란다. 그리고 의회 공직자들에 고마움을 표한다. <저작권자 ⓒ 핫타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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