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장흥 용화사 내 10∼12세기 사찰터(석조약사여래좌상 서남쪽) 확인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5월 31일 오전 11시 장흥 용화사에서 현장설명회 개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은 장흥 용화사 내 석조약사여래좌상 앞쪽 서남편에서 고려 시대에 조성된 건물터 기초부가 일부 확인되어 오는 31일 오전 11시 전남 장흥 용화사에서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
장흥 용화사에는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석조약사여래좌상(전남유형문화재)이 모셔져 있고, 18세기부터 불자사터(拂子寺址)라고 알려져 있던 곳이다. 사찰과 약 500m 거리의 석교마을에는 사찰에서 사용된 대형의 석조유구가 남아 있다. 2021년 이 불상이 자리하고 있는 건물 앞마당에서 통일신라 소형금동불상과 납, 수정으로 만든 구슬이 발견되어 올해 4월부터 사찰 경내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용화사 경내 발굴조사 결과, 석조약사여래좌상 앞쪽 서남편에서 고려 시대에 조성된 건물터 기초부가 일부 확인되었다.
이 건물터는 주춧돌 하부의 적심석(돌을 쌓을 때 안쪽에 쌓는 돌)이 4개소, 전면 석축기단 9m, 후면 석축기단이 약 3m가 남아 있었고, 기단 앞쪽으로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이는 작은 연못 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건물지 내부에서는 통일신라 말∼고려 시대 기와 조각과 11세기대 고급 청자 편이 다수 출토되었다.
그 밖에도 아궁이시설과 돌로 만든 경계(석렬, 石烈) 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최소 3차례 이상 건물의 개축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시기적으로는 10∼12세기 중심의 유물로 건물지의 연대를 유추할 수 있다. 현재 3×1칸 건물은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으나 약사여래좌상을 모신 건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이번 발굴에서 ‘○風寺(○풍사)’라고 추정되는 기와 조각이 출토되어 사찰 명칭에 대한 추가 연구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재의 용화사 주변에서 상감청자와 조선 시대 분청사기, 백자 편 등도 수습되어 꽤 오랜 기간 법통이 유지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오른팔과 허리 아래 부분이 결실되었지만, 부드럽고 통통한 얼굴에 미소를 살짝 머금고 있다. 약함(藥函)이 있었다고 전하는 왼손은 주름과 손톱까지 묘사하는 등 사실적으로 조각되었고, 두터운 법의(法衣)와 왼쪽어깨의 가사장식인 띠 매듭 표현은 경주 남산 삼릉계 입구의 석조여래좌상,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과 매우 유사하다. 광배에는 크고 굵직함이 느껴지는 연꽃문양이 조각되었는데 경주에서 출토되는 통일신라 막새기와 문양과 흡사하다.
이 불상은 남아 있는 높이가 2.5m에 이르는 대형으로, 광배를 포함하면 5m 정도의 상당한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주변에서 찾은 광배 파편 2개의 원 위치도 이번에 새롭게 확인하였다. 그러나 1954년에 넘어져 방치된 불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불신의 아래쪽과 뒤쪽을 철근과 시멘트를 발라 지지해 놓았는데 현재 철근이 노출되어 있어 불상의 보호와 관리를 위한 체계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장흥 용화사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비슷한 규모는 경주 남산의 상선암 마애여래좌상(5,2m, 9세기)이 있다.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이 시기 경주지역 불상 등 관련 자료를 토대로 연구를 진행하면 원형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작권자 ⓒ 핫타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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