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건축물은 인간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다. 세월이 흐르면서 흥망성쇠가 반복되며 저마다의 고유한 역사와 이야기, 분위기와 향기를 품게 된다. 오래되고 낡은 건축물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는 대신 옛 건축물의 기억을 살리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재생’이 의미를 갖는 이유다. 수원시가 건축물과 산업유산 등 주요 건축자산들을 재활용한 성공적인 사례들도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새로운 만남으로 역사를 잇고 있다. 첫 번째로 소개할 공간은 팔달산 아래 자리잡은 ‘열린문화공간 후소’다.
◇200년을 품은 터, 40년을 품은 건물 수원화성의 관광 거점 화성행궁을 바라보고 왼쪽편으로 수원시화성사업소와 수원문화재단 건물 사이로 열리는 행궁길은 공방거리로 유명하다. 나무, 도예, 칠보 등 다양한 공예를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이 줄지어 들어서 있고,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개성이 넘치는 카페와 음식점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우물도 남아 있어 매우 이색적인 거리다.
아기자기한 행궁길을 200여m가량 걸어가다 보면 잘 꾸며진 정원을 갖춘 2층 가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열린문화공간 후소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도심 건물들 사이에서 숨을 틔워주는 정원은 아담하지만 기품이 흐른다. 입구에는 안쪽 방향으로 안내하듯 팔을 뻗은 멋진 소나무가 있고,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잘 관리돼 제각각 자태를 뽐내고 있어 행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공간의 이야기는 19세기에 시작된다. 1861년(철종 12) 이병진이 지었으며, 이후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근택(1865~1919)이 의적에게 칼을 맞은 뒤 수원으로 이사해 죽을 때까지 살았던 집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후 1922년부터 수원의 대지주였던 양성관(1867~1947)이 소유하며 ‘양성관 가옥’으로 불리기 시작한 남창동 99칸집 터였다. 팔달산 아래 5200여㎡ 넘는 넓은 대지를 차지했던 남창동 99칸집 일부는 일제강점기 이후 수원지방검찰청, 남창동사무소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양성관의 후손들이 소유하던 99칸집을 매도해 38개 필지로 분리 매매가 이뤄졌다. 원래 가옥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3년 10월 일부는 한국민속촌으로 옮겨져 지금도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필지 중 99-28번지(653㎡)는 백내과병원 원장이 매입해 집을 지었는데, 그것이 현재 건물의 원형이다. 1977년 신축된 건물은 ‘예술의전당’을 설계한 김석철 건축가가 설계했으며, 이후 40년간 건축주가 거주하며 ‘백내과 원장집’으로 알려져 부촌 가옥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오래된 공간에 새생명을 불어넣다 99칸집 터에 들어선 구옥은 2017년 11월 수원시가 매입한 뒤 새로운 사명이 주어졌다. 대지면적 1170㎡, 연면적 334㎡, 지상 2층 규모의 백내과 원장집을 리모델링해 시민의 쉼터이자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하면서다. 오래된 건물의 문화적 재활용을 위해 고민하며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 끝에 수원시는 후소 오주석 선생을 기념하는 공간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내부 리모델링은 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전시공간으로서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먼저 방 2개와 거실, 주방, 식당, 화장실을 갖춘 전형적인 가정주택 구조의 1층은 문화 및 전시공간으로 만들었다. 건물 중앙 거실은 전시실로, 안쪽 방 두 개는 터서 교육 및 회의실로, 입구 맞은편 위치했던 주방은 사무실로 변신시켰다. 2개의 방과 복도, 계단, 화장실, 옥외공간이 있던 2층은 상설전시공간 및 자료실로 바꿨다. 큰 방에 자료를 비치하고, 작은방과 복도 및 발코니를 개축해 ‘오주석의 서재’를 꾸몄다. 특히 현관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주택 구조를 그대로 보존해 집의 느낌을 살렸다.
반면 외부는 개방감을 위해 다양한 변화를 줬다. 고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보였던 높은 담장은 대폭 낮췄다. 3~4m에 달해 내부 정원이나 건물 모습이 보이지 않던 원래 담장을 허리께 높이로 내렸고, 재료 또한 공방거리에 어울리는 것으로 바꿨다. 입구쪽에 별도로 존재했던 차고 건물도 철거한 뒤 작은 잔디밭을 만들어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편안한 쉼터 분위기를 조성했다. 또 1층 거실 공간에서 마당으로 이어지는 나무데크를 설치해 내부 공간이 확장되는 느낌을 연출했다. 정문은 제주도 전통주택에서 차용한 ‘정낭’을 세워 개방감과 열린공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모든 준비를 마친 2018년 9월, 열린문화공간 후소는 문을 활짝 열고 사람들을 맞기 시작했다.
◇시민 누구에게나 활짝 열린 공간 열린문화공간 후소는 크게 2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1층은 전시공간으로, 2층은 ‘오주석의 서재’로 꾸며져 행궁길 여행 중 가볍게 산책하듯 즐기는 친근한 문화공간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선 뒤 왼쪽으로 돌면 전시공간이 펼쳐진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만큼 규모는 작지만 전시실의 품격은 결코 낮지 않다. 오히려 아늑한 공간에서 오롯이 작품과의 만남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지금은 테마전 ‘에필로그-어느 수원 연극인’이 전시되고 있다. 수원 출신의 연극인 故 김성열(1954~2019)과 수원의 연극사를 재조명하는 내용이다. 대학 시절부터 수원에 살면서 연극 활동을 한 김성열은 1883년 극단 ‘성(城)’을 창단하고, ‘혜경궁 홍씨’, ‘정조대왕’, 뮤지컬 ‘나혜석’ 등 수원의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한 연극을 만들었다. 또 수원화성 축성 200주년을 맞은 1996년에는 ‘제1회 수원성 국제연극제’를 기획하는 등 수원지역 연극계의 발전을 이끌었다. 오는 8월13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기증한 연극 홍보물, 극본, 사진, 영상 등의 기증자료들을 통해 수원 연극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오래된 나무계단을 올라 2층으로 들어서면 고서 특유의 책향기가 가득해 ‘서재’에 왔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수원 출신 미술사학자 오주석의 서재를 재현한 공간이다. 열린문화공간 후소(後素)라는 이름은 그의 호에서 따왔다. 다양한 저술과 전시기획으로 김홍도 등 옛 그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킨 인물로 평가받는 오주석이 남긴 저서와 연구자료 등이 이곳에 남아 있다. 창문에서 보이는 정원과 팔달산의 고즈넉한 풍경이 일품이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아담한 규모의 미술사 자료실에는 작은 테이블 두 개가 놓여 건물보다 나이가 많은 고서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또 계단 왼편에 작은 방에서는 풍속화 등을 클래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영상물이 상시 상영된다.
공간과 건축물을 개인적으로 추억하는 사람들의 발길도 종종 이어진다. 99칸집에 살았던 양성관의 후손들이 후소로 변한 공간을 찾아 옛집을 그려보기도 하고, 백내과 원장댁 후손들이 낮아진 담장을 보며 추억을 회상하기도 했다. 열린문화공간 후소를 찾은 한 관람객은 “화성행궁과 팔달산을 방문했다가 알게 되어 가끔 쉬어가는 공간인데, 수원시의 노력으로 오래된 공간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핫타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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