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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군 오수 출신 고 이강진,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 추서

송석봉 기자 | 기사입력 2022/03/02 [10:04]

임실군 오수 출신 고 이강진,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 추서

송석봉 기자 | 입력 : 2022/03/02 [10:04]

임실군 오수면 출신 고 이강진(李康珍, 1895~1923) 씨가 3? 1절을 맞아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에 추서됐다.

 

군에 따르면 이강진은 전주이씨 춘성정 이담손의 후손으로 1895년에 아버지는 이기철, 어머니 창원정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호는 정회(貞會), 부인은 순흥안씨이다. 1923년 2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강진은 1919년 3월 23일 오수 만세운동 당시 이기송(李起松, 1888~1939)이 만세운동에 참여하라는 전갈을 받고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

 

1920년 10월 3일 독립대동단 활동으로 남원경찰서에 체포되어 1920년 9월 21일 제령 제7호 위반으로 판결을 받았다.

 

매일신보 1920년 10월 4일자 신문에는“대동단원 체포 : 남원경찰서원이 밤중에 근거디를 의워싸고 젼북지 단원과 관게쟈를 거의 다 테포”하였다는 기사와 함께 김재구, 이희신, 이강진, 이기주, 곽칠용, 김형규, 김사문, 유시동, 권창순, 정윤권, 이범수 등 11명의 이름이 거론됐다.

 

독립대동단(獨立大同團)은 1919년 3월에 전협, 최익환, 김가진 등이 모여 설립된 독립운동단체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첫째 한국을 일본제국의 통치에서 이탈하게 해 독립국을 형성하게 할 것, 둘째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확보할 것, 셋째 사회주의를 철저히 실행할 것 등을 목표로 하였는데, 경기도·충청도·전라도·경상도·평안도·함경도·만주 등에 지부를 설치해 조직을 확대했다.

 

이강진 선생의 독립유공자 추서에 힘썼던 이정로(李廷魯, 75세) 옹은 지금도 조부 이강진 선생의 옛집을 지키고 있다.

 

그는 “1919년 8월경 조선 독립대동단 강령을 듣고 대대로 내려오던 종택을 사매면에 거주하는 이씨에게 팔아 독립자금을 건네기도 하였는데, 아버지(이영재)가 1963년에 사매면에 거주하는 이교상의 아들 이용기 씨로부터 선대의 종택을 다시 사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회상했다.

 

한편 1919년 3월 23일~24일에 있었던 3.23오수만세운동은 이기송(李起松), 오병용(吳秉鎔)을 중심으로 이만의(李萬儀), 이병열, 김일봉 등이 중심이 되어 2,000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격렬한 만세운동을 펼쳤다.

 

당시 이기송 선생은 원동산에서 오수장터에 모여든 사람들에게“우리 조선이 독립국인데, 10여 년 전에 일본에 합병당하였으니 2,000만 우리 국민 모두가 합심해야 한다”라고 연설한 후 원동산공원을 출발하여 몇 번이고 거리를 돌면서 만세를 불렀으며 경찰과 주재소, 면사무소 등을 습격하고, 유리창과 문짝을 부수고 사무실 비품 등을 파괴했다.

 

임실지역 3.1만세운동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사람이 100여 명이며, 둔덕 이씨 16명은 오수3.23만세운동으로 형을 받았고, 덕계리 중촌마을 양천허씨 5명이 재판에 회부되기도 하였다. 이들은 적게는 4개월에서 많게는 7년에 이르는 징역형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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