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의 어린 여성들이 세계적인 여자축구선수를 꿈꿀 수 있게 만들고 싶다.”
한국 여자축구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선수 홍경숙은 지도자가 돼 부탄의 여자축구를 이끌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의 작은 왕국 부탄은 신비로운 미지의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홍경숙 감독은 이곳에서 여자축구 전반을 총괄하며 선수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홍경숙 감독은 지난해 4월 KFA 해외 지도자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부탄에 파견됐다. KFA 해외 지도자 지원 사업은 상대적으로 축구 인프라가 낙후된 국가에 한국인 지도자를 파견하고 지도자 급여를 지원함으로써 해당 국가의 축구 발전을 돕고 지도자의 역량을 강화하는 사업이다.
부탄은 축구 약소국이다. FIFA 랭킹 상 여자축구는 168위, 남자축구는 185위다. 오랫동안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전통을 지켜온 부탄은 2000년대 들어 조금씩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확장해나가며 빠른 변화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축구로는 2010년에 처음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1년 가까이 부탄에서 생활하고 있는 홍경숙 감독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여전히 적응 중”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한국과 스포츠 환경이 매우 다르다. 이곳에는 운동선수라는 직업이 따로 없다. 남자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교사, 파일럿 등 저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여자 선수들은 대부분이 학생”이라고 설명했다.
생활체육으로 축구를 하는 선수들을 위한 동기부여는 한국에서 전문 축구를 지도했던 경험과 다를 수밖에 없다. 홍경숙 감독은 “부탄의 학교에는 유급 제도가 있어서 학생들이 학업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 와중에 축구선수로서 목표의식을 갖는 것이 힘들다. 축구선수라는 직업으로 성공하는 사례가 그간 없었기 때문에 꿈조차 꾸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홍경숙 감독의 목표는 “부탄의 어린 여성들이 세계적인 여자축구선수를 꿈꿀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국제대회 참가가 늘어나고 선수가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어난다면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이 부탄의 여자축구선수들을 초청해 친선경기를 갖거나 해외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부탄 여자축구는 U-14, U-16, U-19, 성인으로 이어지는 대표팀과 6개 팀으로 진행되는 리그로 운영된다. 이를 총괄하는 홍경숙 감독은 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수당 지급과 군팀의 리그 참여 등을 부탄축구협회에 적극 건의하며 여자축구 발전을 꾀하고 있다. 실제로 여자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선수들은 올해부터 월급을 받게 됐다.
홍경숙 감독은 “고 강병찬 감독(2000년대 초반 부탄 남자 국가대표팀 감독 역임)님이 기반을 잘 닦아놓으신 덕분에 부탄에서 한국 지도자들이 꾸준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여자 감독은 내가 처음인데, 부탄이 성평등에 대한 의식을 높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여자 지도자들의 역량 강화에 많은 지원이 있을 전망이다. 현재 여자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도 골키퍼 코치를 제외하고 모두 여자”라며 더 많은 한국 지도자들이 부탄 여자축구에 관심을 갖기를 바랐다.
한국 여자축구 최초로 결혼과 출산 이후 복귀해 활약했던 선수 홍경숙은 지도자가 돼서도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홍경숙 감독은 “서른 살에 은퇴하고 지도자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다른 지도자들만큼 많은 경험을 쌓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해외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 자원에서 부탄에 오게 된 만큼 좋은 경험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핫타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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