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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경기동부보훈지청, 4월 ‘이달의 안성독립운동가 남상훈(南相薰) 선생’ 선정

노영찬 대표기자 | 기사입력 2023/03/31 [15:50]

안성시-경기동부보훈지청, 4월 ‘이달의 안성독립운동가 남상훈(南相薰) 선생’ 선정

노영찬 대표기자 | 입력 : 2023/03/31 [15:50]

 

안성시와 경기동부보훈지청이 공동으로 2023년 4월 이달의 안성 독립운동가로 남상훈(南相薰, 1885~미상) 선생을 선정했다.

남상훈 선생은 1919년 4월 1일과 2일 양성ㆍ원곡면 연합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35세의 나이로 양성면 추곡리에 살면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선생은 1919년 4월 1일 저녁, 양성에서 만세운동을 벌이자는 권유에 찬성한 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양성으로 이동하였다. 이날 양성면 동항리에 모인 양성면민 1,000여명은 저녁 9시경부터 양성경찰주재소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친 후 해산하려 하였다. 이때 성은고개(현 만세고개, 안성3.1운동기념관)를 넘어온 원곡면민 1,000여명이 합세하여 대규모로 늘어나자 재차 양성경찰주재소를 투석·방화하였다. 이어 양성우편소와 면사무소를 돌며 투석하고 집기와 서류를 불태웠으며, 일본인의 집과 가게를 습격하여 방화하는 등 격렬한 만세운동을 펼쳤다. 또한 양성·원곡면민이 연합한 만세운동으로 일제식민통치기관이 완전히 파괴되고, 2일간 해방지역으로 만들게 되자 간담이 서늘해진 일제는 곧바로 군경을 투입해 참여자들을 체포하는 등 심한 탄압을 가하였다.

이후 체포된 선생은 안성경찰서에서 신문을 받고 서울로 압송되어 기소되었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으나 현재까지 후손을 찾지 못해 미전수 독립유공자로 남아있다.

국가보훈처와 ‘독립유공자 후손찾기’ 협력의 일환으로 안성지역 미전수 독립유공자인 선생을 ‘이달의 안성 독립운동가’ 4월의 인물로 선정했다. 자세한 정보는 안성3.1운동기념관 홈페이지 <안성 독립운동 인물 자료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노영찬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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