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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7월의 역사 인물 ‘문극겸’ 선정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을 다한 문극겸

박재만 선임기자 | 기사입력 2022/07/01 [09:30]

공주시, 7월의 역사 인물 ‘문극겸’ 선정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을 다한 문극겸
박재만 선임기자 | 입력 : 2022/07/01 [09:30]

공주시는 고려 중기 문신으로 충직함의 상징인 문극겸 선생을 7월의 역사 인물로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선생의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덕병(德柄)으로 1158년(의종 12)에 문과에 급제한 선생은 1163년(의종 17) 좌정언(左正言)으로 있을 때 방탕한 생활을 하는 의종(毅宗)에게 환관의 횡포, 권신의 부정부패 등을 비판하고 엄벌에 처할 것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의종의 노여움을 사 좌천됐다.

 

좌천된 뒤 고향인 전라도 남평현(現 나주시)으로 낙향하던 선생은 공주 유구역(維鳩驛)을 지나게 되었는데, 이때 유구역사의 벽에 시 한 수를 지어 써 놓았다.

 

이후 유구역을 지나는 사람들이 이 시를 활용하여 여러 수의 시를 지었으며, 이러한 내용은 어느 화공(?工)에 의해 그림으로 그려져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 그림은 바른말을 하는 신하가 서울을 떠나는 그림이라는 뜻의 ‘간신거국도(諫臣去國圖)’라 불리게 되었으며, 임금과 신하가 서로 소통하는 길을 막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의견에 따라 선생은 복직되었다.

 

1170년(의종 24) 무신의 난이 일어나 대부분의 문신들이 처벌당했지만 선생은 바른말을 서슴지 않았던 충직함이 인정되어 화를 면하였으며, 고위직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다 1189년(명종 19) 6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며, 현재 유구읍 추계리에는 선생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선생의 행적과 관련된 고간원지(叩諫院址)와 묘소 등이 남아있어 선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조병철 문화재과장은 “고려 중기 문신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임금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충직함의 상징인 문극겸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7월의 역사 인물로 선정했다”며, “7월 중 시민을 대상으로 문극겸 선생 관련 프로그램을 개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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